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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적이고 더러운 기술의 시대: 일상의 테크, 살아있는 삶”

by story74719 2025. 7. 19.

우리는 오랫동안 ‘기술’이라는 단어 앞에 반짝이고, 정교하며, 고도화된 이미지를 덧씌워왔다. 깨끗하고 매끄러운 사용자 인터페이스, 자동화된 집안, 반응 빠른 인공지능. 그러나 실생활 속의 기술은 꼭 그렇게 ‘순결’할까?

지금 이 순간에도 거리는 배달 로봇과 전기 킥보드로 북적이고, 스마트 쓰레기통은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데이터를 수집 중이며, 공사장에서는 인공지능 기반 장비들이 먼지와 오일에 뒤덮여 굉음을 내고 있다. 우리 삶에 들어온 기술은 생각보다 훨씬 ‘더럽고, 투박하며,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글에서는 ‘활동적이고 더러운 기술’이라는 개념을 통해, 지금 이 시대의 ‘진짜 기술’이 어떻게 인간과 삶에 더 가까워졌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미래를 보여주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때론 고장나고, 때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작동하며, 때론 불편하고, 심지어 위험하기도 한 기술들. 하지만 바로 그것이야말로 “쓸 수 있는 삶”의 핵심이 아닐까?

“활동적이고 더러운 기술의 시대: 일상의 테크, 살아있는 삶”
“활동적이고 더러운 기술의 시대: 일상의 테크, 살아있는 삶”

실생활 속에 뿌리내린 기술: 더럽지만 유용한 존재들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새 전동 킥보드가 벤치 옆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고, 상점 앞에 스마트락 달린 배달 박스가 자리잡고 있는 걸 본다. 이런 것들이 ‘더러운 기술’이다. 여기서 말하는 더러움은 말 그대로 먼지, 때, 기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실생활에 파고든 기술’이라는 의미가 더 가깝다.

예를 들어 보자.

배달 로봇은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쉽게 넘어지고, 길을 막는 사람을 만나면 멈춰 서 있다. 스마트 휴지통은 센서가 오작동해 계속 뚜껑을 열고 닫기도 한다. AI 스피커는 가족의 대화를 엿듣다가 엉뚱한 대답을 내뱉는다.

이런 모습들은 기술이 실제 세계와 마주했을 때 일어나는 아주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개발자나 마케터들이 그리는 ‘완벽한 기술’이 아닌, ‘사용되는 기술’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기술이 실생활에 파고들수록 완벽함보다는 실용성이 더 중요해진다. 고장나도 바로 고칠 수 있는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쉽게 배워서 쓸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이 기술의 가치를 결정한다.

결국 기술은 더러워야 쓸모가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엔 먼지가 있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도 그런 현실 속에 놓여야 한다. 더 이상 유리 상자 속의 기술이 아닌, 진짜 사람 곁의 기술 말이다.

 

활동적 기술: 고정된 시스템을 넘어서다

‘정적인 기술’과 ‘활동적인 기술’의 차이는 단순히 움직임의 유무만은 아니다. 정적인 기술은 기능적으로는 우수하지만 상황이 조금만 달라져도 쓸 수 없게 된다. 반면 활동적인 기술은 환경에 반응하고,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오히려 불완전함 속에서 진화한다.

예를 들어, 최근 인기 있는 이동형 태양광 충전기는 날씨, 위치,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며, 사용자의 위치 이동에 따라 스스로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과거에는 건물 옥상에 고정된 패널만이 태양광 기술의 전부였다면, 이제는 기술이 움직이고, 활동하며 사용자와 ‘함께 존재’한다.

이런 변화는 AI와 IoT(사물인터넷)의 결합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AI 진공청소기는 사용자의 생활 패턴에 따라 청소 일정을 바꾸고, 스마트 옷걸이는 날씨에 따라 그날 입을 옷을 제안한다.

심지어 스마트 화분은 식물의 상태를 감지해 주인의 스마트폰으로 ‘목말라요’라는 알림을 보내기도 한다.

기술은 점점 더 능동적이 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편의성 이상을 뜻한다. 인간과의 정서적 유대와 적응력이 기술의 새로운 척도가 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활동적인 기술은 고장나기도 쉽고, 에너지 소모가 많을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기술’의 징표다. 더 이상 기술은 정적인 기계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뛰어든 하나의 생명체처럼 작동한다.

 

사용할 수 있는 삶: 기술과 함께 사는 감각을 익히다

‘사용할 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이 말은 단순히 기술을 사용할 줄 안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기술을 나의 일부처럼 받아들이고, 때로는 거리를 두며, 필요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진 삶을 뜻한다.

어떤 사람은 기술을 두려워하고, 또 어떤 이는 무조건 환영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기술과 어떻게 같이 살 것인가’이다. 이때 중요한 건 거리를 조절하는 능력이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중독이 되고, 너무 멀어지면 뒤처진다. 기술과의 관계는 연인과의 관계처럼 조율이 필요하다.

‘더러운 기술’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에게 여지를 남긴다. 버튼 하나로 다 해결되는 시스템보다, 사용자가 판단하고 개입해야 하는 기술이 인간을 더 ‘주체적으로’ 만든다. 디지털 생활이 복잡할수록, 단순하지만 손때 묻은 기술이 인간다움을 보완해준다.

예컨대, 노년층을 위한 단순한 스마트워치나, 아날로그 감각이 결합된 전자 기기들이 각광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완벽한 자동화보다 '반자동화'가 인간의 리듬에 더 잘 맞는 경우가 많다.

‘활용 가능한 삶’이란 결국 기술이 나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감각을 익히는 삶이다. 스마트한 삶보다 ‘쓸 수 있는 삶’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마무리 : 완벽함이 아닌, 살아있는 기술의 시대
우리는 지금 ‘기술’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때로는 고장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며, 때로는 인간보다 느리지만, 분명한 건 이 기술들이 우리 삶을 ‘사용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활동적이고 더러운 기술은 우리의 일상 속에 파고들며, 삶을 더 인간답게, 더 현실감 있게 만들어 준다. 완벽함 대신, 생동감. 효율성 대신, 인간 중심.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의 기술, 그리고 삶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