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루함’을 느끼기 무섭게 손을 스마트폰으로 가져갑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3분, 엘리베이터 안의 30초, 심지어는 화장실에 앉아 있는 짧은 순간까지. 의식조차 못한 채, 우리는 스크롤을 시작하고, 끝이 없는 콘텐츠의 바다에 빠져듭니다. 그 속에서 문득, 나는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지루함을 느껴봤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자극도 없이, 그저 멍하니 있었던 시간. 지루함을 견디는 힘은 이제 훈련이 필요한 능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한동안 멈춰보기로. 스크롤을 멈추고, 지루함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해보기로요.
스크롤의 쾌락, 조용히 침투하는 중독
처음엔 ‘습관’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잠깐 보는 것뿐이고, 금방 끄면 되지 뭐. 하지만 어느 날, 유튜브 쇼츠를 2시간 동안 연속 재생한 저 자신을 발견했을 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정보는 짧고 빠르고 화려하며, 계속해서 다음 것을 유도합니다. 스크롤을 멈추기 어려운 건, 단지 재미 때문이 아니라, 뇌가 끊임없이 자극을 원하게 만드는 구조 속에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멈추면 나는 지루해질 거야”라는 무의식적인 두려움. 우리는 자극에 길들여져,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실패한 시간’으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두려워집니다. 하지만 그 지루함 속에는 창의성의 씨앗이 숨어 있고, 생각의 여백이 있으며, 진짜 나의 감정이 조용히 깨어나는 시간이 존재합니다. 스크롤은 그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 우리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스크롤을 시작하지만, 사실 지루함 속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자라나고 있었던 겁니다.
지루함을 견디는 훈련: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기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훈련은 작고 단순한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는 것.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5분 동안, 그냥 창밖을 바라보는 것.
지하철에서 이어폰 없이 그냥 앉아 있는 것. 이런 아주 짧은 순간들을 견뎌내는 것이 지루함 근육을 키우는 첫 걸음입니다.
저는 하루에 세 번, ‘의도적으로 지루한 시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3분 더 멍하니 누워있기, 점심 먹고 산책하면서 아무것도 듣지 않기, 자기 전에 불 끄고 눈 감은 채 5분간 생각하지 않기. 처음엔 답답했습니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가치 있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점점 알게 되었습니다. 이 느릿한 지루함 속에서 내 마음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는 걸요.
그 전엔 몰랐던 감정이 올라오고, 어렴풋한 생각이 하나씩 다가왔습니다. 지루함은 마음이 말을 걸어오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늘 콘텐츠 속으로 도망치지만 않는다면, 그 안에서 새로운 감각들이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다시 나와 연결되기: 내면의 소리를 회복하는 길
지루함을 견디며 살아본 몇 주 동안,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일단 감정이 더 잘 느껴졌습니다. 예전엔 피드 속 감정에 묻혀 내 감정을 놓치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내 하루의 결이 어떤지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나와 연결되는 감각’이 돌아왔습니다.
자꾸만 외부 자극에 휘둘렸던 마음이, 조금씩 중심을 찾았고, 지루한 시간은 이제 ‘나를 정돈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크롤을 멈추면, 우리는 잃어버린 자아와 재회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고, 조용한 시간이 부끄럽지 않으며, 생산성과 효율성의 늪에서 빠져나와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한 나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지루함은 불편하지만, 그 속엔 삶의 여백이 있습니다. 그 여백을 견디는 사람만이 깊이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루함을 피하지 않고, 함께 살아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자율이고, 회복이며, ‘나’로 사는 길입니다.
마무리: 스크롤을 멈출 수 있을 때, 삶이 시작된다
‘스크롤을 멈춘다’는 건 단지 핸드폰을 내려놓는 일이 아닙니다. 그건 나를 기다리는 용기,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을 신뢰하는 태도,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선택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빨라지고,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흐름 속에서 멈춰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지루함은 회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우리를 깊게 만드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훈련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