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는 무언가를 ‘봅니다’. 휴대폰 알림, 뉴스 헤드라인, 메시지 창. 동시에 무언가를 ‘듣고’ 있죠. 알람, 영상 속 목소리, 배경음악. 그렇게 하루는 끝없이 ‘읽고, 보고, 듣는 것들’로 가득 채워집니다. 문제는 그 많은 정보와 자극 속에 내가 진짜 원하는 감각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뇌는 피로한데 마음은 허기지고, 눈과 귀는 바쁜데도 중심이 흐릿해집니다. 그래서 나는 실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읽지 않고, 보지 않고, 듣지 않는 하루. 오롯이 ‘내 감각’을 다시 만나기 위한 감각 해독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제 저와 같이 감각 해독 프로젝트에 들어가 보도록 할까요?
"그냥 멈춰보기로 했다" : 자극의 회로를 끊는 첫 3시간의 용기
처음엔 간단하게 생각했습니다. 휴대폰을 멀리하고, 음악도 끄고, 책도 영상도 보지 않으면 되겠지. 하지만 이 실험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기’는 의외로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내 손은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향했고, 침묵이 너무 불편해서 무언가를 켜고 싶었습니다. 조용한 공간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멈추는 법을 배우고 나니, 조금씩 새로운 감각이 피어났습니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의 온도, 먼지 사이로 내려앉는 햇빛의 입자, 냉장고 모터 소리가 꺼질 때의 고요함. 익숙하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소리들이 귀를 간질이고, 작은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이건 단순한 침묵이 아니었습니다.
자극의 회로가 꺼지고 나서야 비로소 감각은 본연의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디지털 소음을 다 꺼놓은 뒤, 진짜 음악이 울리는 순간처럼요.
"자극의 홍수 속에서 감정은 어떻게 무뎌졌는가" : 과잉 감각 시대의 무감각
우리는 정보 중독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기사를 스크롤하고, 영상과 오디오를 하루 수백 개씩 넘깁니다.
하나하나 다 기억나지 않더라도 뇌는 모든 자극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짜 내 감정은 점점 뒷전이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기쁜지 슬픈지, 피곤한지 설레는지조차 모르게 되었습니다. 자극은 많지만 감정은 흐릿해졌습니다. 콘텐츠는 감동을 가장하지만, 진짜 감동은 내 안에서 천천히 피어나는 것인데, 우리는 그 시간을 잃었습니다. 읽지 않고, 보지 않고, 듣지 않는 하루는 이 감정의 잿빛 화면을 닦아내는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것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지, 생각보다 많은 감정들이 그 침묵 속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감정은 자극이 아닙니다. 느끼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을 빼앗아 간 게 바로 우리가 매일 흡수하는 무수한 정보와 콘텐츠였던 것이죠.
"침묵은 비어 있는 게 아니라, 가장 풍부한 언어였다" : 해독 이후 찾아온 내면의 소리
감각 해독 프로젝트의 마지막 시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어떤 자극도 흘러들지 않게 하려 애썼고, 귀도 차분히 닫아두었습니다. 처음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처럼 보였지만, 실은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내 안에 쌓여 있던 말들, 눌려 있던 감정들, 놓치고 지나친 직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히 되뇌는 생각, 잊고 있던 추억,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들. 그것들은 읽히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해왔던 내 안의 언어들이었습니다. 감각을 해독하는 일은 결국 ‘내 안으로 되돌아오는 여행’입니다. 세상의 모든 콘텐츠와 정보보다 더 깊고 풍요로운 이야기들이 내 안에 있었음을, 나는 비로소 침묵 속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마무리: 감각을 비워야 마음이 채워진다
하루쯤은 ‘아무것도 읽지 않고, 보지 않고, 듣지 않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처음엔 불안할지 모르지만, 곧 익숙해질 겁니다.
그 불편함을 통과하고 나면, 생각보다 훨씬 넓은 감각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요. 세상의 소리를 끄고, 눈을 돌리고, 정보를 멈추는 시간.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 회복이며, 공허가 아니라 채움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감각을 되찾고, 내 안의 이야기를 듣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