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 종일 콘텐츠의 바다에 잠겨 살아간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블로그, 뉴스, 쇼츠… 손가락은 쉬지 않고 스크롤을 내리고, 이어폰에선 끊임없이 이야기와 음악이 흘러나온다. 알고리즘은 마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처럼, ‘좋아할 만한 것’을 재빠르게 던져준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어쩐지 마음은 공허하다. 꽉 찬 듯한데 비어 있는 기분. 그래서 나는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단 하루, 콘텐츠 소비를 멈추고 오직 나의 창작만으로 시간을 채워보기로.
"오늘 하루, 아무것도 보지 않기로 했다" : 정보 단식 선언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손에 쥐는 것은 휴대폰이었다. SNS 알림을 확인하고, 뉴스 헤드라인을 보고, 습관처럼 유튜브를 켰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무의식적으로 손이 향했을 때, 화면을 끄고 ‘종이 노트’를 꺼냈다. 작은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은 소비 대신 창작만 할 것.”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습관은 무섭게 나를 끌어당겼고, 익숙한 앱 아이콘은 내 의지를 시험했다. 점심시간엔 밥을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고 싶었고, 무심결에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꾹 참고 그 시간을 글쓰기로 채웠다. 누가 볼 것도 아니지만, 지금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조용히 꺼내 종이에 적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손끝이 익숙해지면서 묘하게 즐거워졌다. 콘텐츠 소비는 빠르게 만족을 주지만 금세 증발한다. 반면, 내가 쓴 한 문장은 오래 남는다. 어떤 정보보다도 진짜 나에게 의미 있는 기록이 된다. 그걸 하루 동안 반복하며 알게 되었다.
"내 안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 입력이 아닌 출력을 중심에 둘 때
소비를 멈추자 처음엔 불안이 찾아왔다. 이 텅 빈 시간이 괜히 낭비처럼 느껴졌고, 뭔가 ‘잃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용히 앉아 멍하니 있으면서, 그간 외면했던 내 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나 영상의 흔적이 아닌,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생각들. 내가 자주 생각하지만 말로 꺼낸 적 없는 감정들. 텅 빈 화면 앞에서, 텅 빈 공책 앞에서 나는 나를 마주했다.
입력이 없으니 출력이 시작되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좋았다. 오히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정직한 생각들이 나올 수 있었다. 나는 혼자 글을 쓰고, 나만의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글쓰기 프로젝트를 슬쩍 꺼내 읽어봤다. 그 시간 동안 세상은 여전히 시끌벅적했겠지만, 내 하루는 놀랍도록 고요하고 풍요로웠다. 뭔가를 ‘찍어내기 위해’가 아닌, ‘표현하고 싶어서’ 나온 창작은 정직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이 하루가 다음 날을 바꾸기 시작했다" : 창작의 선순환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고 삶이 완전히 달라지진 않는다. 하지만 그 하루는 확실히 내 안에 어떤 ‘기준점’을 만들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핸드폰을 손에 쥐었을 때, 나는 예전처럼 무작정 유튜브를 켜지 않았다. 대신 어제 쓴 글을 다시 꺼내 읽었다. 그리고 문장을 조금 다듬고, 이어서 써내려갔다. 우리는 창작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써야 하고, 영상을 만들어야 하고, 작품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하지만 아니다. 창작은 단지 “내 안에 있는 걸 꺼내는 일”일 뿐이다. 노트 한 장에 끄적이는 생각, 오늘의 기분을 낙서처럼 남기는 일, 그저 말로 내 마음을 정리하는 것도 훌륭한 창작이다. 그렇게 작은 ‘출력의 습관’은 다음 날을 바꾸고, 그 다음 주를 바꾸고, 언젠가는 인생을 조금씩 바꿔놓는다.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아무리 멋진 콘텐츠도, 내가 만들어내는 말 한마디만큼 내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마무리: 콘텐츠의 바다에서 나만의 섬을 짓다
우리는 ‘보다’에 너무 익숙하다. 누가 뭘 올렸는지, 어떤 콘텐츠가 유행하는지, 그 정보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 자신을 놓치기 쉽다.
하루쯤은 멈춰보자. 그리고 조용히 앉아 내 안의 말들을 꺼내보자. 그 하루가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진짜 내가 태어나는 날일지도 모른다. 오늘 당신의 마음은 무엇을 만들고 싶어 하나요?